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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독서

✨서평 <갈매나무의 시인 백석> 사랑과 그리움의 시

 

서평 <갈매나무의 시인 백석> 아름다움에 깃든 사람 냄새

영화 동주(Dongju 2015)를 보면서 생각난 시가 있습니다. 물론 '별 헤는 밤'은 아닙니다. 시를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옛 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 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 '흰 밤'


그의 이름은 백석 입니다.

이 시를 처음 읽고 난 뒤 망치에 맞은 듯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총 66자에 영화 한 편이 다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가 본 달은 돌담 위에 떠 있어 운치를 주지만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달은 떠 있습니다.

중요한건 달이 아니라 나입니다. 보는 시점의 문제일 뿐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관점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달은 빛을 내지 못하는 그믐이라는 시련도 있지만, 해 못지않은 밝은 빛은 내는 보름도 있습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믐을 지나면 보름이 오니까요. 희망이 중요합니다.

이 시 <흰 밤>에서 강렬함을 느낀 건 하얀 보름달이 아니라 달빛에 드리워진 그림자이자 기구한 여인의 삶입니다. 달이 뜬 풍경에 사람 냄새를 슬쩍 넣어 시를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 흔들림에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고향으로 간 시인은 월북 작가 되다

이 시는 백석의 작품입니다. 그는 6.25 전쟁 후 월북한 시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고향으로 돌아간 시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유학, 조선일보 기자, 영어 선생님이자 시인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이념투쟁의 희생양이기도 합니다. 말년은 시골 촌부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인의 세계와 현실 세계는 간혹 거리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그의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그의 시엔 그의 삶이 투영되다

백석의 이야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야'와의 사랑입니다. 그의 시집 '사슴'에는 시가 담겨 있고, 길상사에는 백석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슬픔과 그리움이 그의 시에는 있습니다. 그의 시선은 늘 사람을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 냄새가 나는 백석의 시를 좋아합니다.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흰 바람 벽이 있어' -일부 발췌-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여우난족골'도 평안도 사투리와 방언에 약간은 어색해합니다. 하지만 두어 번 읽으면 입에 딱 붙는 백석 특유의 어법과 토속적인 분위기에 매료됩니다. 천천히 읽다 보면 마침표를 찾아 쉬고 싶은 마음도 어려운 사투리와 방언도 금새 익숙해집니다. '여우난족골'은 여우가 자주 보이는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어법으로 그려냅니다.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화려한 수사구 보다 한 줄의 시가 더 훌륭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편의 시를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고향'입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서 고향은 꿈에 그리던 곳이라면 백석의 <고향>은 두 손위에 놓인 따뜻한 고향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문들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방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고향' -일부 중략-


백석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의 시집 '사슴'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의 시집인 '사슴'을 서재 책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꽂아 두고 지인들과 차 한잔 하면서 슬쩍 자랑하고 싶습니다. 최고의 컬렉션이 될 것입니다. 1936년 1월 20일에 한지로 인쇄된 100권만 출간된 한정판입니다. 총 3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혹시 양도 생각 있으신 분 댓글 주세요. '저렴히' 가 빠졌네요.


지금까지 서평 <갈매나무의 시인 백석>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