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따스한 영화

✨ 남아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1993 후회없는 삶에 대한 고찰

 

영화 남아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1993 지나온 삶에 대한 회상

하얀 페이지의 검은 글자들이 화면 속에서 살아나다 


<남아있는 나날>을 책으로 읽었습니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다음 페이지의 스티븐슨과 켄튼양이 궁금해 두어 시간을 완전히 몰입해 독서를 마쳤습니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남아있는 나날>에서 소중한 기억 속의 애잔함을 담담한 어조로 써내려갔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인으로 1989년 이 작품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합니다. 2017년에는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얻게 됩니다. 맨부커는 우리나라에도 수상작품이 있어 익숙합니다. 작가 한강님의 <채식주의자>2016 입니다. 


영화의 느낌이 궁금하여 PLAY 버튼을 눌렀습니다. 대체로 영화가 주는 감동이 책을 읽는 독서만 못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영화는 감독에 의해 창조된 미장센을 쫒아가기 때문입니다. 나의 관점이 아닌 감독이 보여주는 세계이기에 그 평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책 이야기는 다음 번으로 미루고 오늘은 오로지 영화 프레임에 집중하겠습니다.

화려한 누군가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



이야기는 주인공 스티븐슨의 여행으로 시작합니다. 집사인 스티븐슨은 새로운 저택 주인의 권유로 휴가를 떠납니다. 목적지는 그녀, 캔튼양입니다. 두 사람은 달링턴 저택에서 한때 집사장과 하녀장으로 같이 일을 했고 자연스럽게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집사라는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스티븐슨은 오로지 일만이 전부인 그런 사내입니다. 캔튼양이 오기 전 부집사장과 하녀장의 야반도주한 사건으로 스티븐슨는 사내 연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집사장의 자부심과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 사이의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영화는 달링턴 저택의 화려함의 뒤에서 노력하는 이들이 주인공입니다. 저택은 훌륭한 배경이며 역사의 기록이 됩니다. 1930년대 전쟁을 앞두고 영국의 총리를 비롯해 각국의 대사와 정치인들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친 곳입니다. 영화 속 배우들은 모르지만 한쪽은 속이려하고 다른 한쪽은 속으려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욕망과 각국의 이익이 대치하는 총성 없는 전쟁터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전장은 스티븐슨과 캔튼양의 밀당입니다.  



감정을 인정하면 모든 게 무너진다

딱딱한 사감 같던 스티븐슨이 책을 읽을 때 그녀가 찾아 옵니다. 읽던 연애 소설 책을 숨기지만 그의 방에 꽃을 두려고 온 그녀에게 들켜 버립니다. 그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사랑의 방정식의 거의 다 풀려서 이제 답만 적으면 됩니다. 정답은 '스티븐슨+캔튼=❤'입니다. 하지만 캔튼양의 마음을 끝내 스티븐슨는 받아 주지 않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면 그 동안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무너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지쳐 떠나려는 그녀에게 그는 오히려 간이창고 청소를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속이기 위한 감정 절제인 셈입니다. 이성으로 감성을 눌러버립니다. 감정을 인정하면 모든 게 무너집니다.


인생의 황혼녘에 비로소 깨달은 삶의 가치

드디어 비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두 주인공은 다시 재회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결론은 스포이므로 생략합니다) 1994년 4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가 압권입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내면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평범하지만 삶의 몰입을 생각하게 합니다. 셔츠의 맨 위 단추는 반드시 잠그지 않아도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찬바람이 들어와 춥기야 하겠지만 그래서 겨울이 차가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안의 따뜻한 온기를 세상과 나눌 수 있습니다. 틈은 나와 타인과의 소통 지점입니다. 막아 버린다면 감옥에 불과합니다. 스티븐슨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 한다지만 순간의 선택은 끊임없이 반복 되니까 너무 조바심 낼 필요는 없습니다.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애잔함을 밀도 있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문득 박완서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기다릴 사람이 없는 밥상 보다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밥상이 훨씬 덜 쓸쓸하다." 천천히 쓸쓸함을 곱씹어 봅니다.

남아있는 나날은 서로를 그리는 사랑의 시간입니다. 지나온 날들 보다 행복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추천 영화 남아있는 나날 1993 The Remains of The Day 이었습니다. 


OST 'The Remains of The Day'를 들으면서 영화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